본문: 시편 130:1-131:3
찬송: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파수꾼의 기다림
아침이 밝기 전의 어둠이 가장 짙습니다. 그러다 여명을 발견하고 소망으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사람마다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마음에 소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에 소망을 둡니다. 내일이 와도 바뀌는 것이 없을 때 소망의 크기만큼 절망이 자라게 됩니다. 사람들이 정죄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하나님이 지적하실 때가 있습니다. 어디에 소망을 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소망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둠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둠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형통한 삶을 살았던 요셉은 감옥에서 술맡은 관원에게 잠시 소망을 두었습니다. 이 년이 지나도록 요셉의 기다림은 헛된 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요셉에게 이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은 사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훗날 식량을 찾아온 형들이 절할 때 깨닫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형들이 두려워하자 요셉은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파수꾼이 되어 아침을 기다립니다. 아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는 시간을 소망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젖뗀 아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곧 아침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갈망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에 있을 때 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졸리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배가 고픈 것입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표현은 울음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한 가지 단어도 배우지 못했지만 엄마들은 그 아이의 필요를 압니다. 많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그 아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엄마의 젖으로 배부를 때입니다. 이미 안전합니다. 이미 풍요롭습니다. 주님을 떠난 자는 대로를 다닐지라도 마침내 풍랑을 만나지만 주님의 품 안에 있는 자는 폭풍 속에서도 평안을 누립니다. 여호와를 갈망하는 자는 젖뗀 아이의 축복을 누립니다. 주님 품 안에 거하는 영혼이 됩니다. 젖뗀 아이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교만한 마음을 먼저 다루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자랑합니다. 젖뗀 아이는 자랑할 수 있는 단어를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잠잠합니다. 불평도 원망도 필요없습니다. 이미 나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이 공급하여 주심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젖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이미 누려본 천국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제목
1.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고 우리에게 아침을 허락하소서. 파수꾼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도록 오직 주님만을 기다리게 하소서.
2.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을 허락하소서. 세상의 소유와 자랑으로 얻을 수 없는 참된 만족을 주님 품 안에서 누리게 하소서. 젖뗀 아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