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추수할 일꾼

By 2022년 2월 5일 No Comments

본문: 눅 10:1-16
찬송: 447장. 이 세상 끝 날까지

평안을 빌라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찾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평안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보냄을 받을 때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얻는 것은 더 강력한 힘을 요구합니다. 양과 이리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잡아 먹힐 양에게 평화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이리가 아니라 양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화가 흘러갑니다. 평화의 강물이 당신의 자리에 흘러가게 하십시오. 하나님이 보낸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악한 도시에 보냄을 받을 때마다 악인들은 더 분노했습니다. 그들의 의로움이 그들의 타락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에게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로움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움 앞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자가 되십시오. 그 사람을 하나님 대하듯이 대하는 것이 그 사람의 평안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낮고 연약한 모습으로 당신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당신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동일하게 겸손한 모습과 메시지를 전해야 마땅합니다. 당신 안에 있는 평안을 보고 평안을 느끼는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심판을 외치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아가는 곳마다 평화 뿐만 아니라 심판이 이뤄집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거부하는 자들은 두려운 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누가 알곡이고 쭉정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에는 구원과 멸망의 사이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사람은 분명히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의 발에서 먼지를 떨어내는 것은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이 없는 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멀어지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입니다. 지금 당신이 누리고 있는 구원의 기회를 두로와 시돈과 소돔과 고모라에 주셨더라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대를 거부한 가버나움과 고라신에게 외칩니다.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고. 그들의 자리는 저 음부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추수할 일꾼은 심판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기도제목

1. 비록 이리 가운데 보냄 받은 양과 같지만 평화를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이 나에게 찾아오신 모습으로 세상으로 보냄 받게 하소서.
2. 복음의 초대에 거부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닫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으로 추수할 밭으로 나아가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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