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By 2022년 3월 3일 No Comments

본문: 눅 18:18-30
찬송: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가진 자의 근심

어떤 관리가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가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했던 두 가지는 선함과 행위입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에서 떠나고 악에 대해서 미련해야 합니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문제는 선과 악의 기준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범죄의 결과였습니다. 인간이 선과 악을 알고 정할 수 있게 된 것이 비극의 시작입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기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생을 얻는 조건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으로 믿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러 갈 때에도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관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 후에 나를 따르라. 그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요구가 분명합니다.

버린 자의 자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공상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이 정말 예수님이 하고 싶으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축복인 이유는 불가능한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부자 관리가 포기하고 돌아간 일이 제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관원이 자신만만하게 여기며 대답했던 선한 일들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선한 행실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연약한 자들을 불러서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누구라도 제자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포기한 자들입니다. 부자 관원이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순종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일 때문이 아니라 순종함 때문에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버린 자들은 이 세상에서 여러 배로 받고 오는 세상에서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기도제목

1. 부자 관원이 가지고 있었던 구원의 조건을 내려 놓고 예수님이 요구하신 한 가지 부족한 점을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2.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포기한 것이 축복의 근원이 됨을 알게 하시고 가진 자의 근심이 아니라 버린 자의 자유를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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