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주와 같은 분은 없습니다

By 2019년 6월 4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10:1-11
찬송: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민족들의 길을 배우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교해 보면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은 초등학문에 해당됩니다. 그 학문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 인간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신학에 대한 딜레마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자리에서 마땅히 취해야할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무리하게 해석하다가 잘못된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이단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다른 곳에서 다른 대상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들은 필히 다른 신을 먼저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신입니다. 그것은 내가 만든 신같은 가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늘의 징조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며 그들에게 종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압제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거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세상의 풍습들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높은 곳에 계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때 진정한 만족과 자유가 있습니다.

참외밭의 허수아비.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헛되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절하고 스스로를 종속시킵니다. 그들의 신은 삼림에서 벤 나무일뿐입니다. 누군가의 정교한 손길로 만들어낸 조각입니다. 예술가의 마음에서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들의 우상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자기가 만들어낸 신에 불과합니다. 그런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찾아나서는 대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 줄 대상을 자신의 손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게 절하고 의지합니다. 심지어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만든 신은 참외밭의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말할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고, 해를 끼치거나, 유익을 줄 수도 없습니다. 진리가 여기 있습니다. 여호와와 같은 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정말 하찮고 아무 가치도 없는 나무조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기 때문에 더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습니다. 우상들은 생각할 능력도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줄 능력도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의 손에 의해 빚어진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능숙한 장인의 작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기에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기에 영광을 빼앗기고 가만히 있으실 수가 없습니다. 죽은 믿음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헛된 것에 미혹된 양심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상 앞에 절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세상 초등학문에서 돌이켜 복음의 능력을 더 경험하게 하소서.
2.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우상의 흔적들을 제거해 주소서. 내가 만들어낸 신이 나를 만족시켜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겸손하게 무릎꿇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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