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26:6-16
찬송: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옥합을 깨뜨리는 자
죽음을 직면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죽기 살기로 살아간다면 도전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부터인가 삶보다 더 실제가 되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죽음 앞에 굴복하고 삶을 빼앗기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죽음을 직면하고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통과해야 할 믿음의 승리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이유는 죽음을 회피하고 싶은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은 주님께 은혜를 받은 자가 분명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많이 있었지만 옥합을 깨뜨리는 사람은 이 여인 뿐이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이 여인을 책망하는 자가 더 많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그 여인의 진심을 알아주셨습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은혜를 낭비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됩니다. 언제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까?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행할 때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길이고 복음을 누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리기까지 사랑하십시오.
옥합을 흥정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흥정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 값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옥합을 깨뜨리지 못하는 자들은 지금도 옥합의 가격을 흥정하고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은혜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멀리 있는 자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옥합을 깨뜨리지 못하고 옥합을 깨뜨리는 자를 괴롭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보다 더 소중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부요한 분이지만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옥합을 흥정하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가 얼마나 가난한 자인지 모를 뿐입니다. 이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은혜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자는 은혜를 소유하지만 옥합을 흥정하는 자는 은혜의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옥합을 흥정하는 사람들 때문에 순전한 복음이 가려집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과 예수님의 몸 값을 흥정하는 제자의 모습이 대비됩니다. 흥정의 목적은 당신의 유익을 조금 더 얻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은 얼마의 가치가 있습니까? 은혜에는 가격이 없지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제목
1. 내 소유와 권리를 포기하지 못하여 아직까지도 옥합을 깨뜨려 본 적이 없는 연약한 자를 사랑하여 복음을 누리게 도와 주소서.
2.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분노하고 돌아서서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던 유다의 위선을 벗어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