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5:1-16
찬송: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인생의 의미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습니다.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말은 틀린 말이 없습니다. 욥의 고통과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합니다. 인생을 너무 쉽게 정의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비교할 때 당신이 살아가는 생애와 삶의 영역은 너무 초라합니다. 그렇다고 그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작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느라고 지금도 방황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제 인생의 의미를 가장 많이 발견하게 됩니까? 고난을 통해서 입니다. 재난은 왜 일어납니까? 고난 당할 때 우리의 질문은 왜 이 고난이 시작되었는가 입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분노할 것입니다. 그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분노합니다. 당신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인생의 고난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그 고난의 이유를 발견한 자만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고난 없이 살아가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욥은 인생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 가운데 있었고 엘리바스는 욥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누가 정말 인생의 의미를 알고 있는 자입니까? 고난을 이야기 하는 자가 아니라 통과한 자입니다.
소망의 이유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할 힘도 없습니다. 일어날 힘도 없는 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함께 손을 잡고 일으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배 고픈 자에게 음식을 나누지 않고 가서 먹을 것을 먹으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말입니다. 힘 없이 쓰러져 있는 욥에게 엘리바스는 이렇게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겠노라고. 당신은 지금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기적을 일으킬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손에서 건지십니다. 그의 칼과 입에서 그 약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악행을 행하는 자는 손으로 입을 막아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입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한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갈망하는 자처럼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바스의 입을 막고 싶으십니다. 당신의 말이 누군가를 살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쓰러진 자에게 비수를 꽂고 있습니까? 질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대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당신이 그 답을 알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답을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질문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인생의 의미를 배우는 고난의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고난을 외면하는 자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 배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쓰러져 있는 자에게 다가가 소망을 확인하는 자가 아니라 그를 일으키며 소망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