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

By 2019년 6월 11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13:15-27
찬송: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은 이 세상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을 기다리던 어떤 사람들에게는 축복의 결혼식이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은 거룩한 신부로 준비된 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종말은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하지 못합니다. 너무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우리는 아직도 두렵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그들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의 마지막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그런데 그들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늦기 전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둠과 사망의 그늘이었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상황에서 살아갑니다. 빛을 바라지만 사망의 그늘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둠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한 어두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이전에도 어둠을 더 원했습니다. 숨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나의 부끄러움을 가리기에 더 안성마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어두움은 심판의 구름입니다. 더 늦기 전에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숨었던 어둠도 사실 하나님의 빛 아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에 이스라엘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여인들의 치마가 올라가고 발꿈치가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죄악의 길을 떠나지 않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도 들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주었던 축복을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아름다운 양 떼가 사라질 것입니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한탄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죄악 때문입니다. 죄는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 대가를 미리 계산할 수만 있어도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훨씬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는 자들은 소경과 같습니다. 눈 앞의 아름다움과 달콤함에 속습니다. 사기꾼의 속삭임에 넘어갑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치마가 머리까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너무나 사랑하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며 간음의 자리에서 헐떡이는 욕정의 소리를 듣고 그 현장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뢰하던 배우자가 간음하는 현장을 보아야 하는 사람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끊임없이 교만하고 우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구스인의 피부색을 바꾸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표범의 반점을 변하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씻을 수 없는 죄인이 분명합니다. 죄악에 익숙한 자가 선을 행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기도제목.

1. 어둠을 사랑했던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우리의 치마가 올라가 수치를 면하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주의 보혈로 우리의 수치를 가려 주시고 씻어 주소서.
2.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구스인의 피부색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선한 일을 행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바꾸시고 선한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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