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4:1-11
찬송: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아름다운 욥의 인생
침묵이 깨졌습니다. 욥이 입술을 열어 한탄하고 죽음을 갈망하는 자처럼 고통을 표현하자 그의 친구들도 입을 열었습니다. 조심스럽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자신이 지금 말할 때가 아닌 것을 알지만 입술을 열었습니다. 혹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너에게 싫증이 나겠지만 들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욥의 인생은 아름다웠습니다. 욥은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차라리 그때 죽음을 허락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하지만, 그의 지난 날은 의인의 삶이었습니다. 욥의 인생은 하나님에게만 자랑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욥의 친구들도 욥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욥은 많은 사람을 가르치던 자였고, 약한 손을 가진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넘어지는 자를 붙들어 주고 무릎이 연약한 자에게 힘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욥처럼 완전한 의인의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완전한 사람을 일반화 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도우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의심 받는 욥의 인생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완전하게 여겨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이 되어도 그 완전함이 의심 받는 일은 너무 쉽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겸손하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흠이 없으신 그 분을 향하여 확신하고 십자가에 못 밖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고 공감해주던 친구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신음하던 욥에게 비수가 되어 날아옵니다. 일반화된 틀에 욥의 모습을 넣어보니 자기도 알지 못하지만 욥에게 이 고통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 자체가 이미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죄 없이 망하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엘리바스처럼 자기의 경험으로 일반화 하는 오류를 우리는 지금도 반복합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누군가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질 것입니다. 당신의 경험이 이 세상의 복잡한 일들을 판단할 근거가 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일반화의 방정식에 하나님도 포함됩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내가 경험한 사실이 나의 믿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정의하기에 당신의 경험은 너무 짧고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큽니다.
기도제목
1. 아름다운 욥의 인생이 도리어 조롱거리가 됩니다. 누군가의 삶을 내가 함부로 평가하지 못함을 깨닫고 누구를 대하든 주님을 대하듯 하게 하소서.
2. 일반화의 방정식에 하나님과 타인을 넣어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나의 말로 상처 받는 이가 없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