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도

By 2019년 6월 12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 14:1-12
찬송: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타는 목마름.

모든 것이 풍족할 때에는 감사를 알지 못합니다. 가난하고 목마른 때를 지나야 자족을 배웁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유다는 슬퍼하고 성문의 무리들이 곤비해져 땅 위에서 애통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로 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의 빗줄기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늦은비와 이른비를 허락하시고 우리의 대지를 적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동일하시지만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요하고 안전하고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십니다. 아니 사실 더 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것을 쫓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은 더러운 그릇에 귀한 음식을 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반역을 고치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시고 가뭄의 때를 지나게 하십니다.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고 식량이 떨어질 것입니다. 광야에서 목마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목말라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물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갈망하게 될 때 다시 눈이 열리고 진정한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기쁨은 다름이 아니라 회개의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원한다면 주님께로 나가 회개하십시오. 그동안 우리는 가짜 기쁨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것은 다시 목마르게 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의 종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보내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먼저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지 않은 회개를 대신하고 먼저 은혜를 구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이스라엘은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때에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선지자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중보기도입니다. 중보자에게 필요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의 멸망 앞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함께 악인을 멸하시는가 라는 주제였습니다.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소돔에 의인이 열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심판을 시작하셨습니다. 의인 열명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에도 구원의 은혜를 롯의 가족에게 베푸셨습니다. 롯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심판의 재앙 앞에서 필요한 것은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이 백성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심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우리도 중보할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의지해서 은혜를 베풀겠습니까? 오늘도 이 도시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도제목.

1. 죄악을 향하여 달려갔던 우리의 죄악을 씻어 주시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 갈망으로 예배하게 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은혜의 바다로 인도하소서.
2.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죄인에게 마땅한 심판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는 그리스도의 기도를 신뢰합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기억하는 그 기도를 사명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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