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9:35-41
찬송: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예수님의 목적
바리새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쫓아내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믿음의 고백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는 시력을 찾았지만 이제 믿음을 찾게 되었습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그는 다시 묻습니다.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님은 그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수가성의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요청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신 것처럼 예수님은 소경이었던 이 사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너무나 개인적인 대화 가운데 자신이 메시야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눈먼 자를 보게 하고, 본다고 말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판 앞에서 당신은 안전합니까? 정말 예수님이 보입니까?
누가 맹인인가
예수님의 심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가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에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그들 속에 보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신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들이 부끄러운 욕심에 가득차 있을 때 내버려 두셨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매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들은 모든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임하겠지만 이미 그때가 오지 않아도 심판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악한 길을 내버려 두시면 그렇게 됩니다. 그들의 눈을 열어 양심이 회복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들이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본다고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수가 없습니다.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빛이 왔으되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정말 주님을 볼 수 있는 자입니까?
기도제목
1.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소서. 내 삶의 실체를 깨닫고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인지 알게 하소서. 주님 나의 눈을 열어주소서. 주의 법의 기이한 역사를 보게 하소서.
2. 나의 무지와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나의 문제와 죄악들을 처리할 능력이 나에게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셔서 이 무거운 짐을 벗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