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예수님의 가르침

By 2021년 2월 22일 No Comments

본문: 마 16:1-12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표적을 분별하라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입니다. 내일은 당신의 소망의 시간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내일은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일이 염려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내일을 염려합니까? 오늘을 감당할 힘도 없으면서. 내 힘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도 내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분명합니다. 내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에게 우리는 표적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내게 당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해 달라 그러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향하여 악하고 음란하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자에게 회개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을 보고 회개할 수 있다면 애굽의 바로가 가장 먼저 회개했을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제시하신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었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의 표적입니다. 차라리 니느웨의 표적이라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회개할 것 같지 않았던 악한 이방 민족이 회개해서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도 요나의 표적으로 회개가 가능했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표적은 무엇입니까?

누룩을 주의하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에 가서야 빵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수에 대해서 책망하기 보다 그들의 염려에 대해서 책망하셨습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누룩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아도 빵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밥 먹여 주냐고 책망하던 불신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할 말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상징하는 누룩의 본질은 불신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믿음의 상징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전통을 의지하고 자기의 의로움을 의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진짜같이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도 바리새인이 살고 있습니다. 누룩은 사실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합니다. 염려는 문제를 더 크게 보이게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당신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누룩을 사용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누룩이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날씨를 분별할 줄 알면서도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요나의 표적을 보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우리에게도 허락하소서.
2. 세상의 염려로 문제가 더 크게 보일 때 주님이 함께 하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여 온전한 진리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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