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8:1-9
찬송: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누가 큰 자인가
대나무는 퀀텀 리프를 합니다. 오랜 세월 기다림 속에 땅 속으로 성장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만 뻗어나갑니다. 때가 되면 하루 아침에 쑥쑥 솓아납니다. 이렇게 급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마디입니다. 그 마디를 딛고 더 뻗어 올라가게 됩니다. 아이들은 키가 자라는 것을 갈망합니다. 서로 키를 재기 위해서 등을 맞댑니다. 혼자서도 키 재는 재미에 살아갑니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키 재기를 하는 사람은 아직 아이입니다. 어른처럼 보이지만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장성한 분량까지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성숙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 더 높아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아직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더 깊어져야 합니다. 더 풍성해져야 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미성숙한 어른이었습니다. 천국에서 누가 더 큰 자인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다시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자기의 낮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계속 큰 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작은 자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한 일입니다.
누가 온전한가
순진한 사람을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순진한 줄 알고 살아갑니다. 알고 보니 이 세상은 정글이었습니다. 약육강식의 현장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동물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세상은 좀 더 높은 수준의 가치가 적용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욕설에 나오는 대상의 존재가 되기 십상입니다. 누군가를 모욕할 때 짐승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짐승보다도 못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짐승들은 본능에 충실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짐승보다 더 고귀한 자가 되기를 소망 하십니다. 그런데 실상은 절망스럽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절망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넘어뜨려야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배가 아프고 다른 사람이 불행해 지는 것을 마음 아파 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외칩니다. 이런 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 여기 있습니다.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실족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내가 실족 할 때도 많습니다. 작은 자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온전함은 그 작은 자를 통하여 증명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여전히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나의 미성숙함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겸손을 배우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되게 하소서.
2.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깨닫게 하소서. 나로 인하여 실족하는 자가 없게 하시고 내 자신이 실족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