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어떤 위로를 원하는가

By 2022년 7월 7일 No Comments

본문: 고린도후서 1:1-11
찬송: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동일한 고난을 통한 위로

위로를 갈망하는 시대입니다. 상처가 많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위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정한 위로는 쓰러진 자를 일으키고 더 견고한 자로 새롭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모든 환난을 통과함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위로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들이 많습니다.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동일한 일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높은 곳에 거하시는 분이시기에 이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아픔과 눈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속단하지 마십시오. 정확하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의 영광과 권리를 포기하고 우리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와 같아지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위로 가운데 당신의 구원이 포함됩니다. 함께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위로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이것이 당신을 살리는 위로입니다. 그리스도의 위로를 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위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위로를 통한 소망

세상도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래서 술도 찾고 친구도 찾습니다. 그럼에도 위로할 수 없는 영역이 남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위로가 존재합니다. 고난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고난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위로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위로는 도리어 상처를 줄 뿐입니다. 소망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는 고난은 위로할 수 없습니다. 깊은 상처만 남고 절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와 예수님이 할 수 있는 위로는 다릅니다. 누구의 위로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위로하시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당신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위로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합니다. 헛된 것들을 태우고 내 안에 주님이 행하신 일만 남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과거에도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신 것처럼 또 미래에도 우리를 건지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 위로를 경험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고난을 통과한 위로가 진짜입니다. 바울을 위로하는 것은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위로는 단지 달콤한 말로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그들을 소망으로 살게 하는 위로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더 많이 위로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기도제목

1. 고난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소망의 삶이 되게 하소서.
2. 십자가의 능력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게 하시고 나의 위로가 나의 만족에 있지 않고 누군가의 구원에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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