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소망>
본문: 요한복음 8:48-59
찬송: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오해할 뿐만 아니라 모욕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이라 폄하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우월한 혈통을 자랑하는 표현입니다. 사마리아는 이방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방인보다 더 멸시하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 들린 자라 놀렸습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도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채찍질을 행한 후에 자주색 옷을 입히고 절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존경과 영광을 받아야 마땅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겸손하셔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무 겸손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새끼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교만한 자들의 왕이 되기 위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조롱은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을 극복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백 세가 되어서 얻은 언약의 아들을 기다리기 전에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 장면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별들의 숫자만이 아니라 별들 가운데 오실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수많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운데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을 소망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의 소망을 다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으로 메시야를 소망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던 분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소망했지 아브라함이 소망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의 소망이 필요합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을 사마리아인과 귀신들린 자로 오해했던 사람들이 소망했던 것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망했던 예수님을 우리도 소망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아브라함보다 크신 분이고 먼저 계신 분임을 믿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