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순전한 백성

By 2019년 10월 7일 No Comments

본문: 레위기 19:19-37
찬송: 423장 먹보다 더 검은.

누구를 위한 기다림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함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 종자를 교미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성적인 관계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온전함을 요구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갈망합니다. 그것이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이라 여기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인줄도 모르고 파괴하는 일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왜곡되고 타락한 것들이 우리를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땅은 정직합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제 만나가 그치고 그들이 경작하여 토산물을 먹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3년 동안 기다리게 한 것은 충분히 열매 맺기까지 그 나무가 자라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급하게 과실을 따는 사람은 최상의 열매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제4년에는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이 더 큰 축복의 시작이 됩니다. 제5년에야 과실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랜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길수록 열매는 충실해지고 그 열매를 얻는 기쁨은 커질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최선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정직하지 못한 저울.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구별되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금지하신 것들도 많습니다. 두 종류의 씨앗을 함께 뿌리지 말아야 합니다. 두 종류의 직조물을 섞지 말아야 합니다. 부부 관계는 온전해야 합니다. 피채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몸에 문신을 새겨도 안됩니다. 딸을 창녀로 주어서는 안됩니다. 노인을 공경해야 합니다.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이것이 가나안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이 가나안을 닮아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세상의 즐거움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저울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중심을 보여줍니다. 저울의 추를 바꾸는 것은 거짓의 기초 위에 성을 쌓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탐욕을 위해서 진실을 파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작은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당신의 양심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 안에 있는 진리의 추가 옮겨진 것이 분명합니다. 저울은 무게를 측량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를 측량하는 도구입니다. 작은 기준을 바꾸는 것 같지만 당신의 삶은 심하게 기울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정직한 저울은 당신의 영혼을 지키는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이 기쁨이 되게 하소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준비하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2. 정직하지 못한 저울 추를 버리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게 하소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가 너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위험하게 하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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