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순례자의 기쁨

By 2019년 9월 27일 No Comments

본문: 시편 122:1-9
찬송: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

사람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고향입니다. 타지에서 고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더 반갑습니다. 더 기쁨이 됩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아갈수록 고향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질 것입니다. 고향이 그리운 것입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을 만나면 그 분들의 마음에 조국이 어떤 의미인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고향은 우리의 뿌리이며 미래입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심겨져 놓은 목적지입니다. 연어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물고기입니다. 바다에서 그 엄청난 거리를 지나 자기가 태어난 강을 찾아옵니다. 강의 물줄기를 타고 올라와 자기가 시작된 곳에서 산란하고 생애를 마감합니다.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놀라운 신비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 성전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은 모두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 자체가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만나게될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향하여 올라 갔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 문 앞에서 노래합니다.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서 있도다. 그렇게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 감격을 주일마다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고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순례자의 노래는 고향을 잊지 않은 자들만 부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평화.

예루살렘에는 심판의 보좌, 다윗의 집의 왕좌가 존재합니다. 왕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왕되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길을 떠난 자들입니다. 예루살렘의 평화는 언제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그 보좌에 앉으실 때입니다. 예루살렘은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방인의 칼날이 아니라 택한 백성들의 우상과 탐욕이었습니다. 그 예루살렘에 평화가 임하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보좌에 계시는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다운지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만민이 와서 기도하는 집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루살렘을 허락하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곳은 너무나 쉽게 강도의 굴혈이 되었습니다. 강도가 예루살렘을 침입한 적이 없고 여전히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이 있는데도 예수님의 눈에는 그 예루살렘이 무너진 성읍으로 보였습니다.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성전을 건축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삼일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로 향합니다. 그곳에 순례자의 참된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기도제목.

1. 나의 고향이 어디인지 깨닫게 하소서. 이 땅의 고향을 향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의 걸음을 중단하지 않게 하소서. 이 땅에서 만난 예수님이 좋아서 초막을 짓는 자가 아니라 고향에서 만나게될 예수님을 갈망하게 하소서.
2. 강도의 굴혈과 같아진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건물 안에 누가 거주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내 마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는 살아있는 성전이 되게 하소서. 무너진 나의 삶을 회복시켜 주소서. 기쁨으로 순례자의 길을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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