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27:35-53
찬송: 150장. 갈보리산 위에
조롱하는 자들의 소망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예수님이 겸손해지실수록 조롱하는 자들과 멸시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커질 것입니다. 예언대로 성취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조롱하는 자들의 출현입니다.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명의 강도 가운데 한 사람도 조롱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어느 지점에서 십자가를 만나게 되든지 십자가는 당신의 운명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자아를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십자가의 자리에서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조롱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나와 상관 없다고 여기는 자들의 조롱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돕기 위한 손길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기의 조롱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구경하는 자들은 자신의 무지와 불신으로 인하여 조롱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가 당신을 결박하고 당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게 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진정한 소망이 됩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가 원하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대하지 않은 죄인들을 위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소망
십자가에서 많은 것이 바뀝니다. 당신의 신분과 미래가 바뀝니다. 그곳에서 온전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부활의 소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던 자들은 메시야를 원했지만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신앙에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는 내가 영광을 돌려야 할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구원해 줄 구원자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버림 받으십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인간들의 창끝에서 시작되었지만 하나님의 손에 버림받은 것으로 완성됩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다윗처럼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거기에는 다시 소망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소망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으로 다시 사실 주님. 그 예수님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도 약속되었습니다. 아들을 내어 주신 아버지의 소망은 우리의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 열매를 얻기 위해서 당신의 온전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는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소망의 상징입니다. 당신은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만 얻을 수 있는 영광을 우리에게 주소서.
2. 예수님의 죽음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의 공로로 내가 살게 하시고 나의 유일한 소망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