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애가 2:18-22
찬송: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선지자의 간절한 기도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신 이유는 그가 눈물 흘릴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눈물을 흘릴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회복해야 할 기도가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안락을 구하며 영적인 성벽이 무너진 것도 모르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은 선지자도 보내시고 원수들의 칼도 보내십니다. 그들의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처절한 고통이 분명했습니다. 여자들이 자기 어린 아이를 잡아 먹고, 제사장과 주의 예언자들이 성소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맨 땅에 쓰러지고 처녀들과 젊은이들이 칼에 맞아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표적을 삼은 대적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방인들의 칼에 살육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비극의 길로 들어서지만 그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선지자가 존재했습니다. 성도의 간절한 기도가 선지자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무너진 잿더미에서 다시 소망으로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원수들의 칼날보다 예리하고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과 사람의 손을 비교해 본다면 무엇이 더 두려운 존재인지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에서도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의 날이지만 하나님이 마지막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재앙과 비교해 본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예루살렘 성의 무너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날을 감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 심판의 날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통하여 우리는 반드시 절망해야 합니다. 혹시 운 좋게 그 자리를 피하고 그 자리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막연한 소망은 진정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절망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서 살아날 소망이 없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아직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절망하지 않아서 입니다. 아직도 내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의지하는 것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절망하십시오. 그리고 소망으로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기도제목
1. 우리는 아직도 온전히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지 않는 완악한 자임을 깨닫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하기 전에 절망해야 할 것을 깨닫고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