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세상이 알 수 없는 사랑

By 2023년 3월 10일 No Comments

본문: 사무엘상 20:35-42
찬송: 393장. 오 신실하신 주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

주님과의 친밀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선행과 기도의 자리는 상급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과 나만의 추억이 당신의 유산입니다.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보다 나중에 주님 앞에서 누리게 될 것들을 위해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수로보니게의 이방 여인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간청하러 왔을 때에 예수님의 표현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이 말씀을 유대인끼리 말할 수 있지만 정말 개라고 여겼던 가나안 여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도 인격이 부족한 교인 가운데 미성숙한 사람이 말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말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세워주기 위해서 세상이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자기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겨오면서 차별해온 바리새인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다시 정반대의 결론으로 달려갑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이 고백은 자기 딸을 위한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주님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울고 있는가

모든 것이 드러나서 이제 다윗과 요나단은 더 이상 드러내며 함께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운명적인 갈림길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 안고 감동의 이별을 하게 됩니다. 서로 입을 맞추고 함께 울었는데 다윗이 더 많이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쫓기는 신세였기 때문에 서러워서 더 많이 울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에 감동한 것입니다. 우리를 감동케 하는 사랑의 경험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관점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인정하는 사이였지만 더 많이 울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자신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목이 마릅니다. 사랑의 노래가 아름답고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주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희생하고 기다리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세상은 절대로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계산될 수 없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고 사랑의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은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주님께 말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과의 친밀함이 회복되기 원합니다.
2.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의 자리에서 두 사람의 눈물이 소중합니다. 다윗이 더 많은 눈물을 흘린 것처럼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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