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선한 싸움

By 2021년 9월 22일 No Comments

본문: 디모데전서 1:12-20
찬송: 597장. 이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

은혜를 받기 위한 조건은 없습니다. 본래 은혜는 자격 없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전에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기 때문에 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은혜를 알지 못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정확하게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풍성했습니다. 그는 오직 은혜로 사는 자였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스스로를 조금 더 의로운 자라고 착각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죄인 가운데 가장 괴수라고 여겼습니다. 그것이 그가 은혜를 놓치지 않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섭섭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당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 수 있습니까?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알게 되었을 때 기다림은 소망이 됩니다. 믿음이 없다면 당신은 언약의 때를 기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선한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싸움을 포기할 때 당신의 마음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파선된 믿음으로 사는 자

성도의 삶은 믿음 없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한 열쇠입니다. 믿음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은 견고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를 흔드는 것들이 많아도 변함 없이 주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습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의 경주가 가능합니까? 선한 싸움을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싸움은 당신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입니다. 선한 싸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누군가를 죽이고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한 싸움보다 치열한 싸움이 없습니다. 내 안의 자아와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 반역한 자들의 유혹에 훨씬 매력을 느낍니다. 자기와의 싸움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이긴 자의 믿음의 삶은 감출 수 없습니다. 파선된 배를 타고 항해할 수 없습니다. 그 배는 가라앉을 것입니다. 그 배가 파선된 이유는 믿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선한 양심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그들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징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멈추기 위해서 입니다. 파선된 믿음은 당신이 선한 싸움에서 패배한 결과입니다.

기도제목

1. 내가 죄인 중에 가장 악한 괴수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지 않게 하소서.
2. 혈육의 싸움을 중단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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