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2:13-22
찬송: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시는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레위는 조금더 특별한 배경을 가진 자였습니다. 평범함을 넘어서 민족적 감정이 좋을 수 없는 세리의 삶을 살던 자였고 도덕적으로 죄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예수님이 레위를 택한 이유는 그가 죄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먹는 것을 보고 질문하였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님은 죄인과 함께 먹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 나의 기준과 자랑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위태롭게 합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히는 것은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하하게 만들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종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드러난 모습은 의로워 보였지만 그들의 내면은 더 연약해 질 최적의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위선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정직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회개로 인도합니다. 그것이 더 거룩한 삶을 갈망하게 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 사람에게 의원이 필요합니다. 정말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언제 금식해야 하는가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거룩한 삶입니다. 그 거룩을 드러내는 종교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가 금식입니다. 금식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고통을 겪기 위해서 결단한 것입니다. 간절함이 우리로 금식하게 합니다. 거룩한 갈망이 우리로 금식기도하게 할 것입니다. 종교적인 열심이 있는 자들이라면 금식기도는 중요한 영적훈련이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그런 종교적인 전통을 알고 유익도 알기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광야에서 금식하며 지내보신 경험이 이미 있으셨습니다. 금식을 통하여 의로움에 도달하는 방식보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로움에 도달하는 것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알고 그대로 사셨습니다. 종교적인 방식으로 완전한 의로움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고 계셨기에 그들을 깨우고 인도하기 위해서 금식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도리어 죄인들과 친구가 되고 어울리며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지금은 기뻐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2. 거룩한 종교적 행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보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기쁨을 갈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