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사람들의 재판장에 서신 심판자

By 2022년 3월 22일 No Comments

본문: 눅 22:63-71
찬송: 150장. 갈보리산 위에

눈을 가리는 소경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광경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습니다. 소경을 돕고 싶다면 당신은 적어도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길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소경이고 누가 보이는 자인지 정도는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누가 자기를 때렸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우매한 상태에 있었는지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들의 눈에 메시야가 너무 연약해 보이고 절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것 하나는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손톱 만큼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그렇게 조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자들도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표적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지 못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이 보이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부르짖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서 완전히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롱은 사람에게도 하지 않습니다.

무지한 자들의 질문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배우면 됩니다. 질문할 수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두 가지 질문이 존재합니다. 내가 알지 못해서 물어보는 질문과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믿지 못해서 질문하는 자는 대답을 듣고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답을 통해서도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는 네가 그리스도냐는 질문이고 또 하나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도 동일한 질문을 세례 요한도 물었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요한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가 깨달을 수 있는 대답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대답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시인한 대답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인정받지 못할 것을 아셨지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셨고 그 이유 때문에 빌라도의 재판장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심판하는 죄인들의 모습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1. 눈을 열어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게 우리를 도와 주소서. 눈을 가리고 예수님을 조롱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2. 무지한 자들의 질문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을 심판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는 것을 준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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