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9:1-16
찬송: 154장 생명의 주여 면류관
빌라도의 배신
빌라도는 십자가의 현장에서 마지막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었던 증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진실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길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군중들의 말 가운데 “그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빌라도를 더 두렵게 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예수님에게 죄가 없고 무리에게 거짓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든 정황은 예수가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으로 결론 내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결론을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빌라도가 배신했던 그 자리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무기력해질 때가 많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빌라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을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사탄은 속삭입니다. 그 누군가는 나의 비겁함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진실 앞에서 당신이 빌라도의 길을 가게 될 때 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예수님입니다. 빌라도의 배신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틀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손을 씻었지만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구원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의 배신을 너무 안타까워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의 배신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당신에게 가장 먼저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 당신을 골고다로 끌고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배신을 예상하고 있으셨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 사람들이 일주일 전에 예수님에게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쁨은 모두 어디로 간 것입니까? 그 소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기대와 다를 때 하나님을 탓하지 말고 당신의 헛된 마음을 탓해야 합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죽이기를 원했습니다. 그 끔찍한 악을 빌라도에게 요구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황제의 충신이 아닙니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비겁한 사람들은 지금도 더 큰 목소리를 내며 빌라도의 등을 밀어내려 할 것 입니다. 빌라도만큼 예수님을 살려내려고 노력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시 한번 유대인들에게 묻습니다. “보라. 너희들의 왕이라” 빌라도는 원하지 않았지만 십자가의 판결을 내려야 했습니다. 유대인이 가이사에게 말합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배신자들을 위해서 십자가로 향하셨습니다.
기도제목
1. 진실 앞에서 무기력한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향한 나의 충성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2. 나의 기대가 무너질 때에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게 하소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