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믿음이 없는 세대

By 2022년 2월 26일 No Comments

본문: 눅 16:19-31
찬송: 522장. 웬일인가 내 형제여

향락 속에 살던 부자

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많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불쌍하게 살고 고난을 감수하고 오해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자는 항상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기며 사치스럽게 살아갔습니다. 넉넉한 소유 덕분에 이런 삶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삶을 꿈꾸게 하는 것이 사탄의 목표입니다. 안전하고 부요하고 고난이 없는 삶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당신의 기도 제목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자 청년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그가 가장 내려 놓지 못할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 놓으라고 요구하십니다.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청년은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바보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계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부요함과 하늘 나라에서의 부요함 가운데 어떤 곳에 당신의 재물을 쌓아 두기 원하십니까? 눈에 보이는 곳에서 살아가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보이는 곳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영원합니다. 영원한 것을 선택하십시오. 부자는 내일 자기의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비참하게 살아가던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였습니다. 이 땅에서 그는 저주받은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지 나사로의 인생을 알지 못합니다. 왜 그가 이 땅에서 그토록 가난하고 비참한 모습이었는가.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일을 중단하십시오. 당신이 그 불행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당신의 수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사로를 향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비참할지라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한 것입니다. 부자가 알지 못하는 신념이 나사로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이런 반전이 가능합니다. 부자는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 찍어서 나의 혀를 시원케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너는 살아있을 때에 온갖 좋은 것을 이미 다 받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구는 나사로를 자기 형제에게 보내 달라고 간청합니다. 죽은 후에 심판 받을 자와 구원 받을 자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커다란 틈이 존재합니다. 자기에게 건너올 수 없다면 살아있는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죽은 자가 눈 앞에서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에서는 구원 받은 나사로가 아니라 후회하는 부자가 많아 집니다.

기도제목

1. 이 땅에서 누리고 위로 받는 자가 아니라 다가올 주님의 나라에서 위로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죽은 자가 살아서 돌아온다 해도 믿지 않을 사람들을 향하여 나아갈 사람은 누구인지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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