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8:31-43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이해할 수 없는 제자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다 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시야가 좁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보는 시야는 넓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메시야를 원하는 자들의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선지자를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인자가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하신 이유는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을 돕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받으실 고난을 이야기 하자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정확하게 대답한 제자였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힘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도리어 그 길을 가시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는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고 명령하신 장면은 믿음 없는 제자들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언제 베드로가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까?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시 예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었을 때였습니다.
잠잠할 수 없는 맹인
여리고에서 예수님 일행이 만난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외쳤습니다. 긍휼을 구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그가 외친 이유는 다시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가 예수님이 가시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외쳤습니다. 잠잠할 수 없는 맹인은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눈을 치유할 수 있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삼 년을 지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늘 듣고 있었지만 여전히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순종하는 힘입니다. 구원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의 시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보지 못하는 자가 인도하는 눈 먼 자들이 많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간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존재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증거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제자의 모습을 버리고 잠잠할 수 없는 맹인의 믿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기도제목
1.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이해할 수 없던 제자의 모습을 버리고 예언이 성취되는 일에 쓰임받게 하소서.
2. 이해할 수 없는 제자의 모습을 버리고 잠잠할 수 없는 맹인의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