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21:15-25
찬송: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찬송: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내 양 떼를 먹이라
내 자신이 용납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양심과 죄책감은 나를 낭떠러지로 몰아넣습니다. 부끄러워서 다시 고개를 들 수 없는 당신을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너무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를 경험해 보았습니다. 실패의 유익은 우리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그 전까지 우리는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너무 쉽게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나의 진짜 모습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 죄인을 주님이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시 사랑을 배워야 할 학생들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실 이 질문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도 동의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베드로의 마음을 치유하는 손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세번이나 요구하십니다. 듣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부탁합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제 너도 배반한 자들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당신이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당신도 이전에 쓰러졌던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베드로의 삶은 이제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인생을 보여주십니다.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라” 마치 저주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나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것이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어떤 제자도 자기의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갈 수 없습니다. 제자는 십자가의 죽음을 지나야 합니다. 그 죽음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의 죽음을 기뻐했습니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아킬레스건은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자기의 사명과 십자가의 죽음까지 아멘으로 수긍하던 베드로가 알고 싶어하던 것은 친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베드로의 경쟁자였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 상관없는 자를 자유케 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삶에 최선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다시 사랑을 가르쳐 주신 이유입니다.
기도제목
1. 나의 연약함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연약하고 배신하고 소망없는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게 하소서. 나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인 것을 깨닫고 사랑하게 하소서.
2. 나와 상관 없는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이 다시 가르쳐주신 사랑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나와 상관 없는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이 다시 가르쳐주신 사랑으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