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7:53-8:11
찬송: 536장 죄 짐에 눌린 사람은
예수님이 바닥에 남기신 메시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 앞에 서면 누구라도 변명을 하고 싶어집니다. 회개는 우리가 죄를 직면할 때 가능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을 직면할 때 가능한 반응입니다. 온전한 회개는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회개는 사탄에게 빌미를 제공할 뿐입니다. 율법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정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정죄는 죄를 다루는 것이지 죄인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라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있었던 자리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죄인을 향하여 돌을 드는 것이 쉽습니다. 이보다 명백한 죄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여인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현장에서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다루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그 자리에 끌려왔을 것입니다. 모세는 왜 간음한 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습니까? 그 죄를 다시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다른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다른 죄인들을 향한 메시지를 남기신 것입니다. 모세는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고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든 자에게 메시지를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여인은 은혜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에 한 사람씩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결론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돌을 든 사람들의 분노
돌을 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죄인들은 여전한데 의인들이 더 많아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다른 종류의 죄인이 많아진 것 뿐입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지 못하고 죄인을 미워합니다. 다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가 주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배워야 합니다. 그 기쁨을 경험해 볼 기회는 오직 주님만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돌을 들고 죄인을 향하여 달려드는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의 죄를 감추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그 죄를 미워하는 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을 뿐입니다. 간음한 여자를 붙잡아온 현장에 돌을 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그 죄에서 자유한 자가 없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모두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명백한 죄인 앞에서 나의 자리를 결정합니다. 정죄의 자리에서 떠나게 되는 것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정죄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셔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다루는데 미숙합니다. 죄를 향한 죄인들의 분노가 죄를 없애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죄를 없앨 수 있습니다.
기도제목
1. 죄를 미워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 예수님이 죄에 대해서 남겨주신 메시지를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2.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내가 주님께 사함받은 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죄에서 자유한 자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