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누구를 위해서 울어야 하는가

By 2023년 6월 9일 No Comments

본문: 예레미야애가 2:11-17
찬송: 343장. 시험 받을 때에

예언자들의 실패

예루살렘을 위한 두 부류의 예언자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하는 예언자와 그들이 들어야 할 말을 전하는 예언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는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미래의 일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내일 일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일 일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듣지 못할 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이고 선지자들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에게 듣지 않은 말을 하는 예언자들이 많아집니다. 그들은 스스로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영에 의해서 미혹된 자들입니다. 예언자들의 실패는 믿음의 공동체를 안타까운 결말로 인도합니다. 그들에게 소망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자기들의 마음대로 행하려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따라가는 모습을 보고 예레미야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책임은 파숫꾼의 책임과 동일합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기의 목숨으로 지켜야 합니다. 예언자는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어 그들의 불행을 막아야 했습니다. 위기의 때에 평안하다고 말함으로서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막지 못했습니다. 성도는 타락한 세상의 선지자의 사명으로 존재합니다.

예루살렘의 실패

지나가는 사람들도 무너진 예루살렘을 보면서 손뼉을 치고 비웃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 성은 무너졌습니다. 그 안에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대적이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가장 아름다운 성이고 온 세상의 기쁨이 되어야 할 존재였습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서 있을 때 열방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고 하나님은 그의 아름다움으로 기쁨을 참지 못하실 것입니다. 원수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역은 하나님을 버리고 원수들의 승리를 허락합니다. 하나님이 두 팔을 벌려 그들을 안아야 했을텐데 원수들의 입을 크게 벌리게 합니다. 원수들이 하나님의 성읍을 삼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곤두박질 시킨 것을 노래합니다. 진정 원수들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구원의 계획 가운데 포함된 일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계획하셨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여인들이 울었습니다. 이제 누구를 위해서 울어야 하는지 분명해 집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울지 말고 먼저 자신을 위해서 우십시오.

기도제목

1. 성공한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2. 원수들의 승리를 보면서 안타깝지만 그 뒤에 하나님이 행하실 회복을 소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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