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5:1-9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의 집
연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 그들에게 부담입니다. 차라리 조용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을 강요당하곤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만 활개하는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은 은혜의 집을 찾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교회는 베데스다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은혜의 장소여야 합니다. 피난처가 되고 도피처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리더십은 아직 왕좌에 앉기 전에도 아둘람 동굴에서 빛을 발하였습니다. 그곳이 은혜의 장소라고 믿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갈 곳 없는 자들을 향하여 문이 열려있습니까? 베데스다는 연약한 자들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곳에서 더 큰 비은혜를 경험할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허상이라는 말입니까? 천사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은혜의 집은 간판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은혜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 당신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은혜를 기대하고 베데스다를 방문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연약한 자들이 모인 곳에 더 치열한 경쟁을 보신 것입니다. 그곳에는 최소한의 인격과 질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무 힘겨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물을 움직이는 때에 먼저 들어가는 자들은 기적을 경험한다고 믿었습니다. 눈 먼 사람들, 다리 저는 사람들, 중풍 병자들, 혈기 마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38년을 기다렸던 한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이 베데스다를 찾아가십니다. 아무도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찾아가십니다. 그에게 한 가지를 원하셨습니다. 아직도 낫기를 원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이 그 사람의 소망의 불을 끄지 못했습니다. 이정도 기다림 후에는 그 소망의 불이 꺼지기 쉽상입니다. 절망하게 하는 자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먼저 물 속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절망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소망을 붙잡았습니다. 소망의 기도가 예수님을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아무도 돕지 않는 자를 돕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당신에게도 그 분이 필요합니다.
기도제목
1. 진정한 사랑의 법이 적용되는 은혜의 집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교회가 이 시대의 은혜의 장소가 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이라도 와서 피할 수 있는 곳이 되게 하소서.
2. 경쟁사회에서 패배자의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허락하소서. 이 시대가 승자만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연약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증거되는 사회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