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 24:23-34
찬송: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진정한 재판관
이 세상에 공의로운 제판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의로운 재판관이 되려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 땅의 재판관에게 공의로운 의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관도 연약합니다. 항상 어디론가 기울어진 관점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이 땅의 재판관은 모든 것을 알지 못지 못합니다. 그의 기준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의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의롭다고 말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의인을 죄인으로 모함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힘 있는 자들이 의로운 자들이 될 때가 많습니다. 손가락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살인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완벽한 재판관인 이유는 은혜를 위한 공의 때문입니다. 은혜는 공의와 충돌합니다.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은혜가 이깁니다. 은혜로 유지되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께 불공평하다고 외치고 살아갑니다. 그런 자들을 은혜로 대하고 기다리고 참아주실 뿐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모든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완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지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진정한 친구
바른 말을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의 책임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사실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숙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입니다. 초면에 당신의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친해지면 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친구는 어려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아첨할 것입니다. 친구는 아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에서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 삼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자유 의지를 허락하셔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친구에 갈급합니다. 외로운 이유는 친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하나님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긴 바리새인은 나의 친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친구가 없다면 또 다른 바리새인에 불과합니다. 친구를 사귀십시오. 좋은 친구를 사겨야 합니다. 나쁜 친구는 당신의 인생을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기도제목
2.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른 말을 해주고 들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