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By 2020년 7월 4일 No Comments
본문: 시편 139:1-12
찬송: 299장 하나님 사랑은

나를 아시는 분

사람마다 비밀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나만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교훈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그 불행 가운데 우리가 서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죄를 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연약합니까? 하나님과 내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도리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말을 듣고 외모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진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가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당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바뀔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외식이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에게만 길을 묻습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

방황을 해본 사람은 절망을 이해합니다.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출구를 찾기 어려운 법입니다. 늪에 빠진 것과 동일합니다. 문제 가운데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왜 시작되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당신에게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자이십니다. 양이 길을 잃는 이유는 목자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찾는 것이 빠를까요 아니면 목자가 양을 찾는 것이 빠를까요? 우리는 문제 가운데에서 양과 같은 근시안을 가지고 길을 찾아 나섭니다. 부지런할수록 목자의 곁에서 멀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 방황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늘 위에도 계시고 스올의 깊은 곳에도 계십니다. 새벽 일찍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갈지라도 주의 손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피할 수 없다는 절망이 아니라 소망의 표현입니다. 모세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인도하느라 많은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배신감과 분노에 길을 잃을 뻔했지만 그가 성공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주님 앞에서 정직한 자의 모습으로 살게 하소서. 나에 대해서 알게 하소서.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지 알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절망스러운 문제에 갇혀서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으로 믿음의 여정을 중단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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