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2:39-53
찬송: 154장 생명의 주여 면류관.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
기도하는 것을 선택이라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영적인 유익을 놓치게 합니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립니다. 성도의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고 어떤 일을 성공리에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당신을 더 위험하게 할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것이 있어서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제자들이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처럼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유혹 가운데 기도가 됩니까?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기도가 당신을 보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는 알라딘 램프가 아니라 당신을 보호하는 영적인 방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간절함.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에서 중보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 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감출 수 없는 존재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기도의 자리에서 조차 위선자의 모습이 된다면 그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당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기도를 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직한 기도를 배우십시오. 기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못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고통스러운 기도는 땀처럼 피를 흘리게 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한 사람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충분히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불순종하는 자가 됩니다. 당신의 실패는 사실 기도의 실패입니다.
배신의 키스.
제자의 입맞춤으로 배신당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그가 입맞춤 하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예수님과 가롯 유다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성전에서 잡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규례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자리에 나아가면서 끝까지 거룩한 종교인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중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가롯 유다가 이용됩니다. 원수의 의도에 이용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배신의 키스는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원수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래도 배신의 키스를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고통을 헤아려 보셨습니까? 끝까지 그 키스를 피하지 않은 예수님의 사랑이 놀랍습니다. 원수가 당신을 속이려고 할 때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까? 제자가 당신을 배신하며 다가와 키스하려고 할 때 피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배신자를 용서하기로 결단하고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내용은 원수를 사랑할 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허락.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의 배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배후에 있는 원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밤에 예수님을 지키기 위해서 칼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칼을 휘두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칼을 휘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한 열심이 교회를 무너뜨릴 때가 훨씬 많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열심인 당신은 지금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의 허락을 기다려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칼로 칠까요?”라고 묻고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칼을 뽑는 베드로가 아니라 기도하는 베드로를 원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시험에 빠질까봐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종의 귀를 만져 고치시고 자기를 잡으러 온 군대에게 말합니다. 이제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이니 나를 잡아가라. 예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하나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제목.
1.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도와 주소서. 기도의 자리에 나가는 것을 방행하는 세력이 너무 많습니다. 나의 육신이 너무 연약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서 시험을 이기게 하소서.
2. 배신의 키스를 하지 않고 신뢰의 키스를 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배신의 키스입니다. 사랑과 존경의 키스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