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17:1-13
찬송: 331장.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어디에 살고 싶습니까?
이 세상은 너무 악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당신이 소망하는 장소가 변화산 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하는 곳에 내 손으로 초막 셋을 짓고 살아가는 것을 꿈꾸게 됩니다. 천국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변화되지 않은 당신이 그곳에 거함으로 그 완벽함이 손상될 것입니다. 그곳은 변화되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형체가 변화되었습니다. 어쩌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천국에 계실 때의 모습을 잠시 비춰주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변화산으로 초대했습니다. 그곳에서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을 꿈꾸며 살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곳이 진짜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거하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 그들이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아무리 기적과 능력을 발휘한다 하여도 너무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 사건은 이 땅에서 보았던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살아가야 할 믿음의 무대는 변화산이 아니라 타락한 산 아래의 세상입니다. 이제 당신의 눈에는 고난이 영광으로 보일 것입니다.
누구를 기다려야 합니까?
요한은 예수님의 동역자였습니다. 예수님 보다 앞에 가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오해했습니다. 첫 번째 오해는 그를 메시야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부인합니다. 먼저 선지자의 모습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위와 삶의 모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를 존경하였습니다. 심지어 헤롯 조차도 사람들이 그를 선지자로 여기기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의 사명에 대한 오해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나아와 회개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세례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으로 완성됩니다. 세례 요한은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그를 가리키기 위해서 부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의 정체와 사명을 혼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위대합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과 같은 자리에서 실패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공통점이 있다면 고난과 영광의 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임의대로 요한을 죽인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대합니다. 요한을 만나서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는 자입니까?
기도제목
1.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변화산의 기적을 보여주신 목적을 깨닫게 하소서. 이 땅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 주소서.
2. 세례 요한과 같이 주님과 아름답게 동역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의 역할과 사명을 혼돈하지 않고 주님을 향한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