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경계선에서

By 2019년 9월 3일 No Comments

본문: 레위기 13:18-46
찬송: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회복의 증거.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에게 회복의 증거를 찾는 것은 제사장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거룩의 개념에는 언제나 경계선이 존재합니다. 안과 밖이 있습니다. 거룩한 존재와 거룩하지 않은 존재가 구별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경계선에서 살아갑니다. 나의 거룩을 지키지 못하면 더러운 자가 됩니다. 문제는 내가 거룩하지 못하면서 거룩한 척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거룩함을 버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십니다. 구원의 과정에서 당신은 어디쯤 서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당신의 구원은 위험합니다. 우리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첫 걸음은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치부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를 만지도록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의 송사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준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회복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상처들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도리어 당신을 더 안전하게 지켜줄 증거가 될 것입니다.

부정하다 외칠 수 있는가.

나병 환자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질병이 확인되는 순간,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하고 공동체를 떠나야 했습니다. 자기의 치료 이전에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는 자기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 입술을 가리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외쳐야 했습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나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들은 이스라엘의 야영지 밖에서 살았습니다. 나병 환자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입니다. 공동체로 돌아가고 싶지만 스스로를 격리해야 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부정하다고 외치는 자를 보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부정하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그 위험을 알리지 않아서 자신도 그리고 공동체도 신음합니다. 부정하다 외치는 양심의 소리가 들리게 하소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만지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병 환자들의 고름을 빨았던 손양원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부정하다 외칠 때 주님이 나의 손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부정하다 외칠 수 있습니까?

기도제목.

1. 거룩함의 경계선에서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 삶의 거룩한 지경을 넓혀 주시고 회복의 증거들을 보게 하소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다시 죄의 길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2. 나의 부정함을 인정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는 바리새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앞에서 나의 부정함을 고백하는 자가 되어 진정한 회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죄인을 품을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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