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8:12-23
찬송: 274장. 나 행한 것 죄 뿐이니
창녀의 옷을 입은 다말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유다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슬픔은 아내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유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다른 곳에서 위로 받기 원했습니다. 아둘람의 친구 히라를 찾아간 유다는 거리에서 창녀를 만나고 그녀와 거래를 하게 됩니다. 성적인 관계를 허락하고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주겠노라고. 그러나 유다에게 염소 새끼가 없어서 약조한 것을 주기 위한 담보물을 건네줍니다. 도장과 끈 그리고 지팡이를 맡기고 그녀에게 들어가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합니다. 창녀의 옷을 입은 며느리를 유다가 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잘못된 만남에 대해서 우리는 창녀의 옷을 입고 시아버지를 유혹했다고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입니다. 유다는 나중에 임신한 며느리의 소식을 듣고 분노합니다. 그녀는 남편을 두 명이나 잃고 정절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는데 임신할 수 없는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분노하고 다말의 죽음이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유다는 자기의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는 위선자에 불과했습니다. 창녀의 옷을 입은 다말을 통하여 메시야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드러내기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하나님도 속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부끄러움을 드러내시고 더 놀라운 영광을 받으십니다.
과부의 옷을 입은 다말
다말은 자기의 육체적 쾌락이나 금전적인 수입을 위해서 창녀의 옷을 입고 시아버지를 유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아시고 유다의 허물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다말을 사용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불행한 여인의 삶을 걸어간 다말이 분명합니다. 그녀에게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첫번째 남편과 두번째 남편은 모두 그들 자신의 악을 인하여 하나님이 죽이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말은 시아버지가 셋째 남편을 허락하실 때까지 자기의 도리를 지키고 아버지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창녀가 아님에도 창녀의 옷을 입고 유다의 연약함을 드러낸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과부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다말에게 그녀의 삶 자체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창녀의 옷을 입히게 한 자는 유다였습니다. 유다가 기다리게 하고 셋째 아들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창녀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녀에게 약조한 물건을 보내고 확인할 수 없었을 때 이곳에 창녀가 없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감추려고 합니다. 수치스러운 자리에 서야 할 자는 다말이 아니라 유다임을 성경이 드러냅니다.
기도제목
1. 창녀의 옷을 입은 다말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다림을 감당하게 도우소서.
2. 창녀의 옷과 과부의 옷을 입고 살아간 다말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시고 유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