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겔 37:1-14
찬송: 183장.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우리는 절망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때가 더 많습니다. 희망을 갖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절망으로 향하는 길이 더 넓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 절망의 계곡에서 우리를 다시 부르시며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살겠느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십자가의 핵심이지만 우리는 그 기적을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이 뼈들이 살겠느냐? 이 질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첫째 너는 나의 능력을 신뢰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둘째 네가 소망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 불가능한 일을 에스겔에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이 마른 뼈에게 대언하라고. 차라리 돌에게 명령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다. 마른 뼈는 죽은 지 오래된 가망 없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마른 뼈에게 명령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생기가 들어가고 힘줄이 붙고 살이 붙고 살갗이 덮였습니다.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그들은 살아있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나아가는 순종입니다. 내 자신에게 빨리 절망하는 것이 낫습니다. 내가 의지하던 다른 것들을 속히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가장 나중에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서 있는 자는 마른 뼈들에게 명령하는 에스겔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망 권세 아래 갇혀 있던 수 많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려고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십자가로 향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사라질 때 하나님의 소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죽을 자들에게 임하게 되면 그 땅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강한 용사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이 뼈들이 살겠느냐고 물으실 때 믿음으로 대답하십시오. 그 때 순종하는 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실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우리가 절망해야 할 대상이 누구이고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마른 뼈에게 명령하여 일어나라고 외치는 에스겔이 되게 하소서.
2.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마른 뼈들로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