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9:14-26
찬송: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개척자이십니다. 그는 어둠으로 짙어가는 이 세상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역자인 세례 요한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우리는 금식하는데 당신은 왜 금식하지 않으십니까? 천국은 기쁨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예수님은 결혼 잔치에 초대 받은 자가 신랑과 함께 하는데 왜 슬퍼하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슬퍼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을 알고 복음을 누리는 길입니다. 복음은 세례 요한 조차도 이해할 수 없고 담아낼 수 없는 새로운 축복이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아직도 복음의 능력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담아내는 복음의 그릇이 너무 오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 기쁨을 종교적인 열심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구하였습니다. 자기 딸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딸을 살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의 집으로 향할 때에 열 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이 그의 옷 자락을 만지고 치유되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나음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그 날 두 여인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열두살 난 어린 소녀였습니다. 그 아이가 죽어서 장례를 위한 애곡하는 자들이 가득했지만 그들을 물리치시고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키셨습니다. 혈루병 앓고 있던 여인은 나병 환자처럼 오랜 시간 부정한 여인으로 여김을 받던 자였습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그의 병을 고쳐주신 것은 부활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소망을 빼앗아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시 소망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다른 소망도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기도제목.
1. 세례 요한 조차도 알지 못했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누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 새로운 가죽부대를 준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우리에게 소망의 주가 계시기에 혈루병으로 고통받던 여인의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자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