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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By 2025년 8월 12일No Comments

본문: 에스겔 16:35-52
찬송: 340장. 어지러운 세상 중에

예루살렘이 그의 아름다움으로 창녀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창녀가 되어갔습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우상들과 음행한 예루살렘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성전에 출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은밀한 가운데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은밀한 죄를 백주 대낮에 다 드러내셨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이 될까요? 하나님의 부끄러움이 됩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진노와 질투의 피흘림이 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될까요?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까지 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진노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근본이 본래 가장 비천한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본래 어머니가 헷 사람이고 아버지가 아모리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존재를 하나님이 불러내어 거룩한 자녀로 삼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타락한 예루살렘은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의 언니는 사마리아이고 그의 여동생은 소돔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가장 자격 없는 자에게서 출발했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이 택하고 부르시면 거룩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낼 수 있는가 에 달려 있습니다. 소돔의 죄는 교만함과 풍요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풍부한 식량과 안정된 번영 속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예루살렘의 죄는 사마리아와 소돔보다 더욱 타락했기에 소돔이 도리어 의롭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수치를 알지도 못하고 감당할 능력도 없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수치까지 감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바꾸는 축복이고 능력입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이 축복하신 아름다움을 버리고 음란한 창녀의 삶을 살아온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시키는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부끄러움 없는 존재로 서게하소서.
2. 나의 근본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알게 하소서. 무엇이 우리를 타락시키고 부끄럽게 하는 것인지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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