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4:1-12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의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허무하게 죽은 것처럼 보였던 세례 요한의 죽음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자 헤롯은 그가 자신이 죽인 선지자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정확하게 같은 방향으로 일하고 사라진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할 때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을 죽였던 헤롯의 아버지는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두 살 아래 아이들을 학살한 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죽음으로 사명을 끝낸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예수님이 사역 하실 수 있는 길을 내었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를 죽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세례 요한이 살아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는 세례 요한이 부활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의인의 죽음은 허무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일관적이었습니다.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 대상이 왕이라 할지라도 그의 잘못을 말하고 그가 회개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자는 위태롭습니다.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싶지 않고 회개를 원하지 않는 자들에게 제거될 운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직언했습니다. 그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회개 대신에 그를 옥에 가두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의 아내 헤로디아는 더 요한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잔치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을 기쁘게 하자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제안했습니다. 헤로디아는 어리석은 것을 구합니다. 부귀영화를 구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요한은 아이의 소원을 따라 쟁반 위에 머리를 가져오게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의로운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가 되지 말고 죽었으나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1. 세례 요한이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던 것처럼 예수님과 동역하는 그 일을 변함없이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허무해 보이는 의인의 죽음을 다시 알게 하시고 살아있으나 죽은 자가 되지 말고 세례 요한처럼 죽었으나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