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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진짜 비참한 자는 누구인가

By 2025년 9월 18일No Comments

본문: 로마서 7:7-25
찬송: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율법은 하나님의 선물이면서 동시에 원수가 사용하는 무기가 됩니다. 우리를 두려움의 성벽에 가두는 무거운 짐입니다. 죄가 노리는 기회가 율법 안에 많습니다. 그의 불화살을 만드는 공장과 같습니다. 원수가 하나님의 율법을 사용하여 우리를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이 너무 높아서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아 나는 죄인이로구나. 이 저주 받은 육체에서 누가 나를 건져낼까 신음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그 자리에 나아가지 않은 자는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은혜를 흉내 내는 자들이 많습니다. 절망해 보지 않은 자는 진정한 은혜의 감격을 알지 못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거룩한 것이지만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에 율법이 없을 때에는 내가 살았으나 율법이 내 삶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를 때가 있습니다. 그 고통을 외면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생명을 이르게 할 계명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이것이 우리를 십자가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죄는 지금도 기회를 찾아서 우리를 무너뜨리고 무기를 겨누고 있습니다. 죄가 문턱에 움크리고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를 다스리고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율법이 죄를 드러냅니다. 그가 드러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죄입니다. 죄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거부하고 살아가며 내가 왕 노릇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내가 의로운 자인 줄 알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절망하십시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비춰주시는 은혜의 빛줄기를 맛보아야 합니다. 원하는 바는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바를 행하는 비참한 자가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됩니까? 자기를 의지하고 살았던 모습을 내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지 못하는 자가 진짜 비참한 자입니다.

기도제목.

1. 내 안에 거하는 죄를 인식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바를 행하게 되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깨닫게 하소서.
2. 나의 비참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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