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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겔 23:1-21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애굽에서 자라며 음란한 짓을 해 오던 두 자매의 이름이 오홀라와 오홀리바입니다. 오홀라는 “그녀의 장막”이라는 뜻이고 오홀리바는 “그녀 안의 내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오홀라는 사마리아를 의미하고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누가 더 음란하고 누가 더 우상을 많이 숭배했을까요? 사마리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유다의 역사가 조금 더 명맥을 유지하게 하셨고 남유다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정 반대였습니다. 더 거룩한 곳이 부패하면 더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던 대상은 육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특권을 모두 잊어버린 모습으로 변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사랑하여 속물이 되면 더 보기에 흉한 모습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육체의 기쁨을 추구하며 앗시리아 남자들을 갈망했습니다. 자주색 옷을 입고 잘 생긴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모와 세상의 권력으로 이스라엘을 유혹했습니다. 그녀의 처녀 젖가슴을 만져지고 그들은 그녀 위에서 정욕을 쏟았습니다. 능욕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비참한 일이 일어납니다. 두 자매는 그들의 애인의 손에 버림을 받고 벌거벗겨졌습니다. 아들과 딸들을 데리고 갔으며 그녀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녀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음란한 두 자매를 향한 하나님의 칼이 되었고 그들은 두 자매를 향하여 재판장처럼 행동했습니다. 오홀리바는 오홀라가 가는 길을 보고 자신은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홀리바는 언니보다 더 음란한 짓을 행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의 모습을 벽에서 발견하고 그들을 따라가서 음욕을 품고 애정 행위를 벌이며 나날이 더러워져 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끼시는 두 자매가 더럽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은 더 찢어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애굽에서 배웠던 음란을 다시 행했습니다. 더러워진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더러움을 깨끗게 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불하신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언약적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죄악의 길을 보고 돌이키는 은혜를 입게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영적인 음행에서 떠나게 하소서.
2. 이 시대의 타락한 모습을 닮아가지 않게 구별하여 주시고 언약적 사랑을 회복하는 십자가의 자로 나아가 깨끗함을 입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