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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와 정죄의 차이 담임목사 칼럼
2026년 6월 3일

징계와 정죄의 차이

본문: 고전 11:27-34 찬송: 465장. 주 믿는 나 남 위해 자기를 돌아보는 자는 위대한 용기를 가진 자입니다. 자기를 직면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것은 위대한 행위입니다. 성찬을 위해서 우리에게…
칭찬할 수 없는 이유 담임목사 칼럼
2026년 6월 2일

칭찬할 수 없는 이유

본문: 고전 11:17-26 찬송: 466장.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 성찬의 자리는 예수님을 기념하고 하나 되기 위한 자리입니다. 함께 모여 성찬을 하는 자리를 향하여 바울은 칭찬이 아니라 책망을 합니다. 그 모임이 도리어 그리스도의 몸을 헤치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쟁이 있는 상태로 성찬의…
하나 되기 위한 차이 담임목사 칼럼
2026년 6월 1일

하나 되기 위한 차이

본문: 고전 11:1-16 찬송: 208장. 내 주의 나라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차이와 동등함을 배웁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여정 가운데…
주님의 분노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30일

주님의 분노

본문: 고전 10:14-22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단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성찬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방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성찬예식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과 언약의 음료를 마십니다. 구원의 기쁨과 회개의 축복을 누리는…
광야의 사람들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29일

광야의 사람들

본문: 고전 10:1-13 찬송: 262장. 날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 모두에게 광야가 존재합니다. 삶의 고단한 시간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인생 전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광야는 당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부족할…
경주자의 목표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28일

경주자의 목표

본문: 고전 9:19-27 찬송: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자신의 자리를 찾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양한 모양으로 그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 모양으로 복음을 전달하는 자의…
삶으로 드러낸 복음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27일

삶으로 드러낸 복음

본문: 고전 9:11-18 찬송: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주님의 일을 담당하는 사역자는 자기를 드러내는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이 드러나야 마땅합니다. 영적인 씨앗을 뿌렸다면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자의 모습은 진정한 복음의…
포기할 수 없는 것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26일

포기할 수 없는 것

본문: 고전 9:1-10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바울은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영혼은 자유했습니다. 어떤 것도 그의 영혼을 속박할 수 없는 복음의 진리 위해서 자유롭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정한 사도였습니다. 초대교회 열두 사도에…
진정한 자유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25일

진정한 자유

본문: 고전 8:1-13 찬송: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누구나 자유를 갈망합니다. 자유가 없다면 죽음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그 만큼 자유가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우리가 자유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를 갈망하다가 종이 될 때가 많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자유를 오해하게…
변화된 사람 담임목사 칼럼
2026년 5월 23일

변화된 사람

본문: 고전 7:17-24 찬송: 434장.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예수님을 만나서 믿게 되고 거듭난 사람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중생한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난 날의 삶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지난 날의 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자는 부르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