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위로하시는 예수님

By 2022년 1월 25일 No Comments

본문: 눅 7:11-17
찬송: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우리의 삶에 눈물 흘릴 일이 많습니다. 눈물은 고통의 상징이기도 하고 절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 눈물을 볼 때 마음이 약해집니다. 불쌍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눈물 흘리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때로는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느헤미야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성전 기초를 놓고 울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울었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자리에서 울던 눈물과 다른 눈물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입니다. 눈물은 감정의 표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눈물 흘릴 때 마음은 치유됩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것이 더 아픈 일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안타까워 하시며 우셨습니다. 그 고통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아들이 죽은 자리에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과부는 이미 남편을 잃은 자입니다. 이제 유일한 소망이 되었던 외아들을 잃었을 때 또 한번 하늘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죽은 자를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로는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들을 살리고 과부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어떻게 살리셨는가

예수님은 죽은 자의 관을 만지셨습니다. 문둥병자를 손으로 만지신 것처럼 죽은 자를 만지신 것은 예수님의 두려움보다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실 때 파도가 잠잠하여 졌습니다. 죽은 자를 향하여 명령하실 때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를 향하여 명령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를 향하여 외치는 명령이시기도 합니다. 죽은 자가 예수님의 명령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죽음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죽음이란 생명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코에서 호흡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넣어 주시는 분입니다. 죽은 자를 향하여 명령할 때 마른 뼈가 되살아 납니다. 과부와 함께한 사람들은 절망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절망의 상징이 되지만 예수님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 안에 살아있는 자아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들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과부를 위로하기 위해 죽음의 절망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라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기도제목

1. 눈물로 아들을 잃은 과부를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함께 느끼는 위로자가 되게 하소서.
2. 죽음의 두려움과 절망 앞에서 눈물 흘리는 자이지만 죽음 이후에 부활의 기쁨을 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알게 하소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