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

By 2022년 6월 6일 6월 7th, 2022 No Comments

본문: 고전 15:20-34
찬송: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아담의 패배 이후에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최초에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 때문에 아담은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실패의 상징으로 내어주게 됩니다. 작은 죄가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것을 무너뜨리는지 아담의 삶에서 발견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오게 되고 그 멍에는 모든 인류의 저주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아담의 죄는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의 삶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은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이 빼앗긴 영광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부활이 들어오게 되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예정된 두 가지 다른 결론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담의 패배 이후에 우리는 모두 죽음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 이후에 죽음의 권세는 힘을 잃고 부활의 소망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 이후에

아담이 패배한 결과는 너무 혹독합니다. 아담의 패배로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아담처럼 반역하고 죄를 범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결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대상은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을 그분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발 아래 두었다는 표현은 완전한 승리의 증거입니다. 복종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원수는 패배자의 자리에서 심판을 받게 되지만 우리는 승리자의 자리에서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순종의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상으로 오셔서 죽음을 상대하여 승리하신 것 뿐만 아니라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거려고 하신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능력은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당시에 성도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도 세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죽음에서 건지시는 주님의 능력을 사모함 때문입니다. 바울은 살아서 죽음을 이긴 믿음으로 날마다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맹수들과 싸웠던 힘도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바울의 주장은 소망을 잃고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제목

1. 내 안에 아담의 죄악과 연약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소서.
2.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의 삶에 열매 맺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으로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는 진정한 믿음의 증거가 드러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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